얼마전에 아래 포스팅에서 대학원 시절 지도교수님에 대한 얘기를 짧게 했었는데, 오늘은 그 지도교수님에 대해 자세하게 이야기를 해볼까한다.
https://wannabe-a-betterman.tistory.com/19
운동에 관하여(체력의 중요성은 이재용도 알고 있다)
◈ 운동의 목적에 관하여 운동이란 무엇인가? 운동은 왜 하는 것일까? 사람마다 운동을 하는 이유는 천차만별일 것이다. - 몸짱이 되기 위해 - 재미(취미)로 - 체력을 기르기 위해 - 다들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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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것의 기본 '체력'
우리 연구실의 졸업 요건 중 하나는 '하프마라톤 2시간 이내 완주'였다.
교수님은 논문 잘 못쓰는 건 봐줄 수 있어도 이 조건만큼은 절대 양보없다고 하셨다.
왜냐면 교수님은 체력이 모든 것을 하기 위한 기본 조건이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이다.
그 뒤로도 교수님과 세미나나 대화를 할 때면 체력을 길러야 뭐든 할 수 있다면서 체력의 중요성을 항상 강조하셨었다.
(물론 그 당시 난 이해를 하지 못했다)
어쨌든 처음에는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생각하고 알겠다고 하고 연구실에 들어갔는데, 몇 달 뒤 내 인생에 지옥이 펼쳐지게 될지는 몰랐다.

그 해 하프마라톤 일정이 나오자 선배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고, 며칠 뒤부터 교수님 주도로 매주 2~3번 새벽 5시부터 2시간 정도 마라톤 연습을 시작하게 됐다.
그렇게 새벽부터 마라톤 연습을 하고 있으면, 종종 현타가 오는데 그때마다 부르던 노래가 있었다.
god의 '길'이었는데 가사가 아주 찰떡이었다.
특히 이 소절을 좋아했다.
내가 가는 이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 곳은 어딘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오늘도 난 걸어가고 있네
(중략)
나는 왜 이 길에 서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이 길의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
나는 무엇을 꿈꾸는가
그건 누굴 위한 꿈일까
그 꿈을 이루면 난 웃을 수 있을까
달리는 중에 이 노래를 부르고 있자면 힘든 상황에서도 어이가 없어서 웃게 되더라...

연습을 한 날이면 하루종일 힘도 없고 비실비실한게 피곤해서 픽픽 쓰려졌다.
맨날 졸고 있으니 당연히 공부가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그 날만 힘들면 상관없는데, 근육통이 온 몸을 뒤덮어서 며칠씩 날 힘들게했다.
그 전까지 난 운동이라는건 해본적이 없었다.
허약해질대로 허약해진 내 몸으로 2시간 내내 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내 마음 속에는 이게 과연 체력을 기르는 것인가? 체력을 방전하는 것인가?'하는 의심의 생각이 항상 있었다.
그래도 어쩌겠나.
일단 하프마라톤을 2시간 이내로 완주하겠다고 했으니 어쩔 수 없이 연습을 하는 수 밖에 없었다.
몇 달간의 훈련을 마치고, 무사히 하프마라톤을 완주했다.
(1시간 58분 00초.....)
이제 지긋지긋한 마라톤 연습도 함께 끝났다.
그런데 그 뒤 내 몸에 변화가 생겼다.
낮에 더 이상 졸지 않는 것이었다.
원래 식사 후 1시간 낮잠은 거의 루틴이었는데, 이제 더 이상 졸지 않는 것이었다.
집중력도 더 좋아지고, 더 이상 예전만큼 피곤을 자주 느끼지 않게 됐다.
체력이 좋아진 것이다.
이 변화가 신기해서 교수님께 말씀을 드렸더니, 더 이상 첨언을 안하시고 그냥 미소만 지으셨다.
이 부분이 더 멋있었다.
보통 본인의 의견대로 하라고해서 잘 됐을 경우 '봐 내가 뭐랬어!' 이러면서 그 무용담을 늘어놓기 마련인데,
'스스로 깨달았다니 그걸로 충분하다'라는 듯한 미소라니.....
어쨌든 그 뒤로 나는 운동(이라고 쓰고 '체력'이라고 읽는다)이 엄청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덕분에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것에 대해 한가지를 배웠다.

◈ 교수님이 마라톤을 꾸준히 하시는 이유
교수님이 마라톤을 꾸준히 하시는데는 이유가 있다.
죽음에 대해 교수님은 좀 특이한 생각을 가지고 계신다.
대부분 사람들은 오래 살고 싶어하는데, 교수님은 오래 살고 싶다고 하시지 않으셨다.
자신의 죽음과 관련하여 교수님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
'오래 살고 싶은 마음은 없다.
노년에 병들고 약해져서 병상에서 하루하루 버티는 삶은 의미가 없다.
건강하게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죽고 싶다.
그게 내 바램이다.'
나이가 먹으면 체력이 많이 떨어거나, 심한 병에 걸려서, 몸이 잘 움직이지 않아, 병상에서 여생을 보내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그런 경우에 보통 남아있는 가족들이 병 간호를 해야해서 힘들기도하고, 무엇보다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아서 본인이 제일 힘들 것이다.
교수님은 나이먹어감에 따른 이런 점을 경계하신것이다.
본인이 살면서 경험하고 여러 사람들을 봤을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몸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으신 것 같다.
앉아서 공부만하고 먹기만하면 노년에 몸에 문제가 생겨서 인생이 힘들어진다고 하셨다.
그 당시에는 독특하다고만 생각했었는데, 나이를 좀 더 먹어보니 그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게 됐다.
덕분에 나도 꾸준히 운동을 하면서 살고 있다.
(물론 교수님만큼 열심히 하진 않지만...)
교수님이 사람 하나 살리셨다.
◈ 교수님의 자식 교육관
교수님께 감명을 받은게 또 하나있다.
바로 자식 교육관이다.
아들이 어렸을때는 아버지가 세상에서 제일 위대한 존재고, 제일 기댈 수 있는 존재이다.
그래서 항상 존경하는 인물에 아버지가 있고, 모든 고민을 아버지와 상담하고, 아버지와 함께 논다.
하지만 학교 및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점점 아버지와의 관계가 조금씩 바뀐다.
아들이 인정하는 멘토, 친구, 존경하는 사람은 아버지에게서 또래 친구들이나 연예인들로 바뀌게 된다.
결국 아버지와 대화하는 횟수가 현저히 줄고,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는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까지든다.
보통 중학교 때 부터 이런 현상이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교수님과 아들간의 관계는 이와 달랐다.
교수님은 아들이 한명있다.
그 당시 그 친구는 중3이었는데, 아버지를 유독 잘 따랐다.
새벽에 마라톤 연습할때도 따라와서 같이 연습을 하고, 평소에 아버지를 보는 눈빛이나 표정, 말투에서 존경이 묻어나는게 보였다.
한두번 그런거면 그런가보다 할텐데 매번 볼때마다 그러니 신기했다.
내가 아는 중3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 당시 나는 교육법에 관심이 많아서 그 모습을 흥미롭게 관찰했다.
어느 날 교수님과 대화할 기회가 생겨서 그 것에 대해 자세히 물어봤다.
(나)
교수님.
보통 중3이면 아들이 아버지랑 안 놀고 밖으로 돌려고 할때인데, 00이는 왜 이렇게 교수님을 잘 따르나요?
(교수님)
그렇게 보이나?
나는 별로 한게 없어
(나)
제 눈에는 신기해서 어떤 방식으로 양육을 하시는지 궁금해서 여쭤봅니다.
(교수님)
음....
강요하지 않네
(나)
네?
(교수님)
무언가를 하라고 강요하지 않네
싫은 소리를 안해서 그런가봐
(나)
그럼 교수님은 서울대 출신에 독일 아헨공대 박사 조기졸업하셨잖아요.
그 정도면 아들 성적에 기대가 많으실텐데, 사실 00이가 공부를 잘하는 편은 아니잖아요.
답답하지는 않으세요?
보통같으면 충분히 뭐라고 하실만 할 거 같은데요?
(교수님)
나라고 왜 안 답답하겠나
사실 내가 제일 답답하다네 ㅋㅋㅋ
스스로도 마음대로 안되는데, 다른 사람은 말할것도 없어.
그런건 스스로 느껴야지.
내가 옆에서 말한다고 듣겠나?
(나)
어떻게 하면 스스로 느끼게 할 수 있을까요?
(교수님)
그냥 옆에서 내가 솔선수범하는 수 밖에 없는 것 같네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고 내가 먼저 하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따라하더군
(나)
그러다가 애가 계속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으면요?
(교수님)
믿는거지
그리고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으면 또 어떤가?
내가 원하는 방향이 꼭 정답인것도 아니잖나?
내가 기억하는 대화는 여기까지이다.
여기서 나는 세가지를 배웠다.
1. 아이에게 강요해봐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
되려 날 싫어하거나 피한다.
2. 아이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부모의 행동이다.
아이가 'TV를 봤으면' 한다면 내가 TV를 보면 되고,
아이가 '공부를 했으면' 한다면 내가 집에서 공부를 하면 된다.
3. 내가 믿고 있는 것이 꼭 정답인 것은 아니다.
내 경험이 이 세상 모든 경험이 아니므로 내가 믿고 있는 것이 최선이 아닐 수 있다.
이 것들은 그때 이후로 마음에 품고 살고 있다.
하지만 생각대로 잘 되지 않는 것이 함정이다.

난 언제쯤 교수님 같은 인품을 지닌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이 외에도 일화가 많은데 일단 생각나는 것만 적어봤다 ㅋㅋ
생전에 소크라테스는 책을 쓴 적이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소크라테스에 대해 알게 됐을까?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플라톤이 스승에 대해 쓴 기록이 오늘날까지 남아있어서, 우리가 소크라테스라는 철학자를 알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어떻게 보면 나도 플라톤 같은 일을 한 것 같다.
우리 교수님 재밌는 분인데 일화가 생각날때마다 하나씩 써봐야겠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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